"유럽에 110兆 베팅" 진격의 겔싱어…불붙는 글로벌 '반도체 대전'

미국 종합반도체기업(IDM)인 인텔이 최대 950억달러(약 110조원)를 투입해 유럽에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지난 3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재진출 선언 이후 차세대 공정 기술 로드맵 공개, 추가 시설투자 계획 발표 등에 이어 공격적 행보를 이어간 것으로, 향후 삼성전자(005930)·대만 TSMC 등과 ‘글로벌 반도체’ 대전에 더욱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인텔 유럽 공장에 ‘110조’ 투자…연일 공격적 행보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독일 뮌헨에서 열린 자동차전시회 ‘IAA 2021’에서 “유럽의 새로운 부지에 반도체 공장 2곳을 세울 계획”이라며 “이번 총투자는 약 10년에 걸쳐 95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유럽의 공장 신설 계획은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 WSJ은 인텔의 이번 투자가 컴퓨터와 자동차, 전자기기 등 반도체 수요가 커지고 있는 분야를 조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인텔은 코로나19와 자연재해, 공장 화재 등으로 ‘공급난’이 지속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부문엔 아일랜드 공장의 제조 역량을 집중시킨다는 계획이다.

앞서 인텔은 지난 4월 백악관이 주재한 반도체 공급망 회의 이후 향후 6~9개월 내 완성차 업계를 위해 칩 생산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때 ‘반도체 제국’이라고 불렸던 인텔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경쟁사들에 맹추격 당하며 최근 입지가 축소되고 있다는 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올해 2월 인텔의 최연소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이었던 겔싱어가 CEO로 취임, ‘구원투수’로 나서면서 총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첫 행보는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이었다. 겔싱어는 취임 한 달만인 3월 ‘IDM 2.0’ 전략을 발표하면서 미국 애리조나주에 200억달러(약 22조6000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시설을 증설하면서 2018년 공식 철수했던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인텔의 선전포고로 TSMC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양강 체제에도 ‘지각 변동’이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쏟아졌다. 7월 진행한 기술전략 설명회 ‘인텔 엑셀러레이티드’에선 파운드리 시장 정복을 위한 포부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025년부터 1.8㎚(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에서 제품을 생산, 업계 1·2위인 TSMC와 삼성전자를 따라잡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시 겔싱어는 “이제 인텔 파운드리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며 “인텔이 돌아왔다”고 했다.

아울러 겔싱어는 최근 미국·유럽 정상들과 잇따라 만나면서 생산시설 건설을 위한 보조금 확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TSMC 3년 116조·삼성은 150조…경쟁 격화

인텔뿐 아니라 TSMC와 삼성전자도 잇따라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글로벌 반도체 경쟁은 한층 더 격화하고 있다. 파운드리 1위인 TSMC는 올해 초 280억달러(약 32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힌 데 이어 4월 앞으로 3년 동안 1000억달러(약 116조원)를 생산능력 확대에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TSMC는 미국에 5㎚ 생산라인을 포함해 최대 6곳의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TSMC와 인텔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던 삼성전자도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이후 투자에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지난달 발표한 향후 3년간 240조원 규모의 투자 중 150조원 이상을 반도체에 쏟아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선 오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최근 171조원으로 규모를 늘렸다. 당장 170억달러(약 19조원) 규모의 미국 내 파운드리 공장 건설이 임박한 상황이다. 공정기술 면에서도 3㎚ 공정부터 차세대 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을 가장 먼저 도입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목표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의 이번 계획 발표는 유럽 시장에 발 빠르게 진출해 미국·유럽 파운드리 시장 공략을 가속화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삼성전자와 TSMC 등과 파운드리 시장을 중심으로 3파전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